번역의 오류가 만든 신데렐라 유리구두

엄민용 기자

입력 : 2021.08.30 03:00


 

자정 이후 청소년의 온라인 PC게임 접속을 막는 강제적 셧다운제, 일명 ‘신데렐라법’이 폐지된다. 그동안 실효성을 놓고 말이 많던 법이다. 특히 게임을 접하는 환경이 바뀌어 가는데 PC에만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화려한 옷을 입고 번쩍거리는 유리구두를 신고서 멋진 춤을 추다가 자정이 되면 갑자기 ‘재를 뒤집어쓴 아이(신데렐라)’로 되돌아간다는 설정이 우습듯이, 115959초까지 게임을 즐기던 기분을 단 1초 만에 접으라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문득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눈에 걸린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도 발에 꽉 끼면 살갗이 벗겨지고, 그 아픔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다. 유리로 만든 구두라면 그 아픔은 더욱 심할 게 뻔하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절대 늘어나지 않는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춤을 출 바보는 없다.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던 것을 1697년 자신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에 처음 실은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도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는 ‘상드리용(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의 발에 하얀 털신을 신겼다. 하지만 그의 프랑스판 이야기가 영어로 옮겨지면서 프랑스어 ‘vair(일종의 흰색 털)’가 ‘verre(유리)’로 잘못 번역되는 바람에 ‘하얀 털신’이 ‘유리구두’로 둔갑했다. 동화적 상상력을 살려 고의로 오역했다는 설도 있다. 하얀 털신을 신은 상드리용보다는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가 더 아름다워 보일 듯하다.

유리가 아닌 ‘가죽’을 재료로 해 만든 서양식 신을 일컫는 ‘구두’는 일본말 ‘구쓰(くつ)’가 변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말 중에는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어쩔 수 없이 쓰는 말이 많다. ‘가마니’도 그중 하나다. 곡식 등을 담는 데 쓰는 ‘가마니’는 1908년 일본에서 가마니틀이 들어오면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말 ‘가마스(かます)’에서 유래됐다. 그 이전에 우리는 ‘섬’을 썼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일본말에 뿌리를 뒀다고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로 바꿔 쓰기 힘들다면 일본식 말도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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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8300300085#csidx982355d1c789ae28b782df744276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