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 강사, 영화사에서 판권 관련 일을 하는 직원, 회화를 가르치는 중년 부부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영상번역 업무를 배우고 싶다고 몰려드네요."


영상번역 전문업체 '누벨콘텐츠 미디어'의 박나연 대표는 17일 최근 영상번역가들이 주목받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외부 강연하는 3개월 과정의 영상번역 아카데미가 지난 11일 개강했는데 수강생의 이력이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최근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출현으로 영상콘텐츠가 급증하고, 일감도 늘어 영상번역가의 전망이 밝다'는 아시아경제 보도(2019 1213일자)가 나간 뒤 관심이 부쩍 커졌다" "아카데미 관련 상담이 크게 늘고, 이력서도 많이 받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 '콘텐츠 공룡' 출현, 번역시장 들썩=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2016년을 기점으로 영상번역의 지형이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기존 영화나 케이블 방송, 주문형비디오(VOD) 등을 뛰어넘는 콘텐츠 물량 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영화·비디오물, 공연물, 광고·선전물 등을 심의해 등급분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최근 4년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서비스하기 위해 등급분류를 요청한 국외비디오물은 2016 1226건에서 지난해 1494건으로 268건이 늘었다. 4년간 누적된 콘텐츠는 총 5553건이다. 같은 기간 등급분류된 전체 국외비디오물(11414) 48.7%가 넷플릭스 콘텐츠였다.


넷플릭스는 이를 국내에 배포하기 전 영상번역 전문 판매사(벤더)와 계약을 한다. 벤더에서는 업무 경험이 있는 프리랜서 작가들을 섭외해 자막과 더빙 등 영상번역을 진행한다.


영상물등급위 관계자는 "국외비디오의 경우 자막이나 음성으로 번역된 욕설·비속어·저속어 등의 사용 여부도 등급분류 기준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어 대사나 감정 표현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풀어내는 영상번역가의 어휘 선택이 그만큼 중요하다.




◆ K콘텐츠도 번역이 열쇠지만…= OTT 플랫폼을 타고 우리 영화나 드라마 등 'K콘텐츠'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 우리말 콘텐츠를 외국어로 바꿔 내보내는 일도 국내 번역가들의 몫이다. 넷플릭스는 우리말 작품을 최대 30여개 언어로 자막과 더빙을 입혀 제공한다. 시각장애 이용자들을 위해 오디오 해설 기능도 선보이는데 이를 위한 대본 제작과 더빙에도 번역이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자막은 물론 봉 감독의 말을 전하는 통역사의 어휘까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통번역의 중요성이 입증됐다. 박 대표는 "한국어 작품을 통번역하는 경우에는 우리말 어휘력은 물론 현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이를 압축해서 '말맛'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번역이 이처럼 우리말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지만 번역가에 대한 처우나 대중의 인식은 열악한 실정이다. 이름을 알린 소수의 번역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작품 한 편당 20~3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마저도 콘텐츠가 급증하면서 단가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콘텐츠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으나 OTT 업계나 정부에서는 영상 콘텐츠 제작자·작가 등을 육성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디테일을 담당하는 번역가 양성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번역가 입문을 희망하는 이들이 사설 교육업체나 민간 협회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지만 돈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처우가 보장되지 않아 중도포기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문 번역가 육성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1171011137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