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을 띄어쓰기 없이 입력하면 번역기는 ‘운동+화끈’으로 인식한다.

‘운동화 끈’을 띄어쓰기 없이 입력하면 번역기는 ‘운동+화끈’으로 인식한다.


벌써 2년쯤 전의 일이다. 지인이 엄청나게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며 스마트폰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언니! 구글 번역기에 ‘운동화끈’이라고 검색하면 글쎄 ‘exercise hot’이래요.”

설명하자면 ‘운동화 끈’을 띄어쓰기 없이 검색하면 번역기가 이걸 ‘운동+화끈’으로 인식한다는 거였다. 이 글을 쓰며 확인을 위해 검색해보니 지금은 ‘kinetic hot’이라는 결과가 뜬다. 둘 다 엉뚱한 건 마찬가지다. 소소하게 웃고 넘어가려는데 지인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띄어쓰기해서 ‘운동화 끈’이라고 검색하면 ‘sneaker strap’이라고 제대로 떠요.” 통역사가 아닌 지인은 이걸 ‘제대로’라 말했지만 필자는 좀 갸우뚱했다. ‘운동화=sneaker(s)’ ‘끈=strap’이라고 해서 맞는 번역일까? 운동화 끈을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은 shoelaces였다. 주변의 원어민, 영어권에 오래 거주한 동료 등에게 물어봐도 같은 답이 돌아왔고, 검색을 해봐도 미국식으로 shoe string, 영국식으로는 bootlaces라 부르기도 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strap은 묶고 풀 수 있는 연한 재질의 끈이라기보다는 좀 더 단단한 끈의 느낌이 강하다.

벌써 몇 년째인가. 인공지능(AI)이 통역, 번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기사가 넘쳐난다. 기계번역이 당신들 직업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터무니없이 낮은 번역료를 제시하는 고객사에 “그냥, 번역기 쓰시죠” 하고 거절했다는 업계 선배의 일화도 전해진다.

통번역 일을 해온 지난 10년간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운동화 끈’이라는 말을 통역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통역사가 자판기처럼 단어를 땡그랑 넣으면 다른 단어로 재깍 치환해주는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띄어쓰기를 포함, 사람의 말과 글에는 소소한 문법적인 오류가 너무도 많다. 완벽한 AI 번역이 가능하려면 화자의 말이 거의 완벽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통역은 문제가 더 복잡하다. 모두가 깨끗하게 음성 인식되는 표준 발음과 억양, 문법으로 말을 해야 정확한 AI 통역이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 국제회의에서는 비(非)영어권 출신 화자의 발표를 통역해야 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단어를 제대로 옮겨도 소통이 꼬일 수 있다. 누군가 pear라고 말한 걸 ‘배’라고 옳게 전달해도, 누군가는 조롱박처럼 생긴 서양배 모양의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둥근 국산배 모양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단어 대 의미’의 1 대 1 대응으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머리에 갖고 있는 그림이 각자 다르니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한번은 이미 번역 작업을 마친 문서의 감수 일을 받았다. 번역문을 암만 읽어 내려가도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번역기로 그대로 돌린 문서가 내 손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말하자면 ‘경남 진주’를 pearl(보석 진주)이라고 번역하는 식의 실수가 곳곳에 보였다. 번역기로 번역을 하고 통번역사를 시켜 살짝 손질만 하면 완성도 있는 문서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번역기는 ‘눈치’가 없다. 통역사가 눈치코치 다 따져가며,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려가며 애를 써도 양쪽의 이해와 생각이 달라 소통이 되지 않곤 하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력한 대로 값을 가져다주니 그 결과가 완전할 수 없다. 

여기서 반전. 통역사라고 번역기를 절대 안 쓰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때로 모르는 언어로 된 회의 자료를 받곤 하는데 이럴 때면 어김없이 번역기에 물어본다. 며칠 전 받은 포럼 자료에 스페인어로 작성된 부분이 몇몇 있었다. 영어, 스페인어 간 언어의 유사함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불안한 부분은 번역기로 확인했다. 내용을 얼추 파악하니 한결 편해졌다.

한편 사용자가 과거에 번역했던 구문과의 유사성을 판단해 이전의 번역문을 불러오는 번역 툴을 활용하면 번역 작업이 한결 편리해진다. 두꺼운 사전을 뒤지고 도서관을 헤매야 했을 과거에 비해,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고작 ‘운동화 끈’이라는 단어를 운동화 따로, 끈 따로 인식해 결과를 내놓는 현재의 AI 통번역 기술이 통번역사가 하는 일을 당장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범한 소통을 구성하는 말과 글조차 그 안에 엄청난 정교함을 안고 있음이 경이롭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311614005&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