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우*정입니다

이제 4년차이고,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처지이지만, 혹시나 작은 도움이 될까 해서 글을 씁니다.


저는 원래 영어강사였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고 보람을 느낄 수 없어서 KU-MU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진지하게 통역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통역이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고, 하는 것도 신이 났습니다. 많이 재미있고, 조금 무서운 그런 일이었어요.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학 중에, 당시 영한통역 과목 교수님의 소개로 외교부 산하 기관인 국제 **재단에서 수행통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통역 경험은 행복하다기 보다는 쓰라렸습니다. 엄청 못했거든요. 알고 보니 통역은 많이 무섭고 재미는 별로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 통역이 끝난 후, 저는 나라면, 나를 다시 안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통역 후 내는 회의록을 정말 열심히 써서 제출했습니다. 통역을 잘 못했으니, 회의록이라도 잘 써서 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게 통했는지 저를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KU-MU 졸업 후, 클라이언트라고는 국제**재단 하나뿐인 상태에서 프리랜서 통역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먹고 살 수 있을 지, 일이 계속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고, 그냥 일단 1년만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재단에서는 저를 계속 불러주셨지만, 기관 특성상 주로 봄, 가을에만 통역 일이 있는 지라, 여름과 겨울에는 영어강의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2년차가 되면서, 재단에서 메인 통역사 역할을 주실 때가 많았고, 수행통역 중 방문하게 되는 기관에서 명함을 달라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받아가신 기관 중에 실제로 연락을 해온 기관은 드물었어요. 10개 기관이 명함을 받아가면, 그 중 하나 정도만 실제로 연락을 했습니다. 이 때부터는 외교부의 수행통역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여름과 겨울에는 영어강의를 병행했습니다.

3년차가 되었고, 저는 수행통역 일은 꾸준히 들어오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강의통역이나 회의통역 같은, 좀 더 제대로 된 통역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수행통역은 통역대상인 인사의 비서처럼 행동해야 될 때도 있고, 투어가이드처럼 일할 때도 있고, 가끔은 모시고 다니기만 할 뿐 통역은 할 필요 없는 날도 있었어요. 통역을 하나도 안 하고 수행만 하다가 집에 오는 날이면, 저는 좀 괴로웠습니다. 정체성 혼란이랄까요, 어렵더라도 통역이 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외교부 수행통역 때 방문했던 한국학 ** 연구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주신 일이 가이드업무에 가까운 수행통역 일이었습니다. 정말 오래 고민하다가 일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때부터 제 운이 바뀌었다고 믿습니다. 그 연구원에서는 일을 거절한 저를 타박하는 대신에, 강의통역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요율도 훨씬 높았고요. 열심히 준비했고, 차근히 통역했습니다. 후에 연구원에서는 다른 강의통역과 동시통역도 맡겨 주셨습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기관에서도 있었습니다.

사실 *****연구원의 수행통역 일감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무역협회의 통번역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에이전시에서 번역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즈음의 저는 수행통역을 더 하느니, 번역을 하는 것이 제 실력을 키우는 데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 클라이언트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적으면, 너무 매달리게 됩니다. 통역사로서 마땅히 거절할 수 있는 그런 일도 거절하지 못하거든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이제 4년차가 되었고, 강의통역 비중이 늘었습니다. 동시통역도 아주 가끔 들어옵니다. 앞으로도 좋은 쪽으로 변하기를 바래봅니다.


제가 이 기간 동안 느낀 것은, 프리랜서 통역사는 늘 외부인이고 늘 혼자라는 것입니다. 외부인이니 챙겨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 하는 일이니 다른 사람들 틈에 묻어갈 수 없어요. 그냥 제가 알아서 잘 해야 합니다. 또 통역대상은 늘 초면입니다. 저는 그 분들을 처음 만나고 그 분들도 저를 처음 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죠. 제가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는데, 그게 잘 안 될 때도 많습니다.

통역장소는 대체로 처음 가보는 곳이고, 통역분야도 대체로 다릅니다. 지난 주에는 일산에서 무역관련 통역을 했는데, 이번 주에는 판교에서 공공분야 통역을 합니다. 출근할 때 늘 지도 어플을 켜고 가야 해요.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이 많은, 변화가 많은 직업입니다. 그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대체로는 그 변화무쌍함이 즐거운데, 가끔은 힘들더라고요.


쓰다 보니 글이 자꾸 길어집니다. 프리랜서가 되고자 하시는 동문님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요약해 보겠습니다

1) 맡겨진 일이 통역사의 업무범위를 넘어선다면 거절해야 한다

2) 클라이언트는 무조건 많아야 한다. 그래야 1번이 가능해진다

3) 통역은 홀로 하는 일이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4) 불확실성을 위협이 아니라 기회로 생각하고, 즐기자.


동문님들을 만날 기회가 더 자주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